【87-13 흥사단사 명장면 50선】제15회, 아카데미 재건과 대안 모색Ⅱ
◆ 아카데미 재건과 대안 모색Ⅱ ◆
대학생 아카데미 재건을 위한 노력
민주화의 거센 물결과 세계적 격변 속에서 흥사단 대학생 아카데미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쇠퇴하였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의 주력으로 자리 잡은 아카데미는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오히려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다. 대학생아카데미는 1980년대 말 몇몇 지부 산하의 아카데미를 제외하고는 흥사단 하부조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도체계를 이탈하여 운영되거나 와해된 상황이었다. 대학생들에게 매력을 상실하여 대학별 활동이 거의 중단되거나 조직이 정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흥사단 지부의 대학생 조직 재건 노력과 일부 대학 아카데미 조직의 계승으로 대학생아카데미 조직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흥사단본부에서는 1991년에 제1회 통일꾼수련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수련대회는 전국 아카데미연합수련대회로 통일을 주제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 수련대회에는 고등학생 참가자가 다수였지만, 대학생아카데미 간부급 수련회를 겸하여 본부가 주최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은 수련회였다. 이 모임에는 전국 10여 개 대학의 조직에서 대학생 30여 명이 참석하여 통일을 주제로 한 강론과 토론, 행진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당시 진보적인 통일운동이 활기를 띠는 분위기 속에서 흥사단 대학생아카데미도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본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한 결과, 1992년에는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19개 대학 51명의 아카데미 간부들이 모여 대학생 연합수련대회를 개최하고 제2회 통일꾼수련대회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조직 확장의 전기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일부 대학에서만 현상유지를 하고 대부분 쇠락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무력한 상황과 분위기가 지속되다가 1999년 9월 17일 본부 강당에서 서울지부의 관심과 지원 아래 40여 명의 대학생 및 본부와 지부의 지도자가 모인 가운데 대학생서울아카데미가 재창립(회장 이길주)되었다. 대학생서울아카데미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수요강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대구와 서울에서는 대학생 및 청년 아카데미가 공명선거캠페인에 참여하고, 대전과 울산에서는 지역별 연합체육대회 등 행사가 이루어졌으며, 광주 등 각 지역에서 대학생수련회와 농촌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이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본부와 지부의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와 조직적 활동은 어려웠지만 산발적으로 대전, 대구, 광주, 울산, 제주 등지에서 대학생아카데미 조직이 운영되었고, 순천향대학교와 안양대학교(2000년 창립) 등 일부 대학에서는 지부의 지도·지원과 별도로 흥사단 임원으로 활동하는 이윤배 교수와 송준호 교수의 지원 아래 흥사단 동아리가 명맥을 유지하고 활동을 지속하였다.
본부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대학생아카데미 육성을 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일환으로 1999년 9월 18~19일 양일간 덕유산 종합야영장에서 청년열린마당을 개최한 이래, 2004년까지 연속으로 대학생과 청년의 합동모임 형태의 청년열린마당을 계속하였다. 이런 모임을 통하여 본부는 단의 장래를 위한 계승세대의 역할을 구체화하는데 청년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고자 노력하였다.
그 밖에 2000년에는 서울 우이동에서 대학생아카데미 동계수련회를 실시하였고, 서울지부에서는 지도위원 모임을 구성하여 대학생 조직의 재건과 지도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본부에서는 2002년에 서울 YMCA 다락원에서 전국대학생 NGO리더십캠프를 실시하였다. 이 리더십캠프에서 대학생아카데미 전국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전북대학교아카데미 이현정을 준비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이후 2003년 5월 전남 담양 국제수련원에서 전국에서 모인 50여 명의 대학생아카데미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대학생아카데미전국협의회(흥대협, 의장 이현정)가 창립총회를 갖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2003년 서울에서 국민대학교아카데미가 재 창립되고, 한성대학교(2003)와 한양대학교(2004)에 아카데미가 창립되었다. 이로써 대학생서울아카데미와 더불어 1980중반 이후 오랜만에 서울에 여러 개의 대학생 조직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대학생아카데미가 반짝 활성화되는 기운을 보였던 시기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아카데미는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수 년 만에 다시 활동이 정체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7년도에는 서울에서 대학생 조직이 다시 3개 조직(대학생서울A, 한양대A, 안양대A)으로 축소되어 전국 14개 조직에 회원은 426명이었다. 2011년도 대학생아카데미는 서울에는 전무하고, 광주와 대전에 각각 3개를 포함하여 전국 16개 조직에 395명의 회원이 존재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2007, 2011흥사단활동보고서). 그 후 2012, 2013년 활동보고서에는 아카데미 조직통계조차 보이지 않는다.
중학생아카데미와 어린이흥사단
아카데미운동은 초창기인 6,70년대에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에 중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흥사단 창립 당시부터 입단 자격에 16세 이상이라고 하는 연령의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흥사단이라는 조직의 특성으로 보아 가치판단 능력과 인생관이 형성되어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적 선택과 책임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평생을 같이 할 동지적 결속이 가능하며, 단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수 있는 나이가 16세 정도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 아카데미와 고등학생 아카데미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아카데미 운동도 좀 더 개방적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평생을 함께할 공고한 동지적 결속은 통상단우로 국한하고, 예비단우와 아카데미 회원은 좀 더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비단우의 입단 과정을 완화하고, 아카데미운동 역시 연령의 폭을 확대하고 입회과정을 간소화 하여 대학을 졸업한 청년층과 고등학생 이전의 유소년 층으로 확대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카데미 출신의 직장인 청년층을 조직화 하여 지속적인 아카데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아카데미의 조직을 허용하게 되었다.
1996년에 대신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서주원 단우가 처음으로 중학교아카데미를 창립하고, 그 후 정세영 단우가 천호중학교아카데미를 창설하였다. 이를 계기로 전국으로 중학교 아카데미가 확산되었다.
2000년도에는 제주지부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프로그램만을 진행하던 것을 조직화하고 체계화하여 어린이흥사단이 출범하게 되었다. 제주의 어린이흥사단은 당시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김기영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보이스카우트 지도교사를 하던 김기영 단우가 스카우트 지도 경험과 흥사단아카데미 활동 경험을 살려 어린이흥사단을 창립하여 매우 성공적으로 이끌어갔다. 그 후 제주 어린이흥사단은 초등학교 졸업 후 자연스럽게 중학교아카데미로 연결되고, 학부모들도 각종 체험 활동에 참여하면서 흥사단을 이해하고 입단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를 본보기로 하여 2011년에는 청주지부에서도 어린이 흥사단을 출범시켰다.
2011년 1월 전국임원연수회 주제발표에서는 아카데미가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확대되어 창단100주년(아카데미50주년)이 되는 2013년까지 500개의 아카데미 조직을 목표로 하는 ‘50-500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초등학생 아카데미와 중학생 아카데미의 창립은 아카데미 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중학생 아카데미와 어린이 아카데미는 앞으로 학교교육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제3의 아카데미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자료출처 : 『흥사단100년사』. 2013. pp.608-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