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6월 10일, 흥사단 충북지부가 주최하고 충북도산아카데미연구원이 주관한 “도산 안창호 선생 ‘이상촌 건설계획’의 현대적 재조명”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다녀왔다. 이번 세미나에서 충북지부의 최대 관심은 도시개발의 철학적, 역사적 뿌리를 찾는 데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의 ‘이상촌계획’에 주목하였다. 발제자와 패널 참가자들 대부분은 도시공학, 건설환경공학, 도시계획, 주거복지 등 도시개발이나 도시균형발전 분야에서 공헌하는 전문가들이다. 발표자들은 ‘도산의 이상촌건설 계획’에 주목하고 도산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마침 이 자리에 강원도 양구군의 ‘인문학이 익는 마을’ 조성 계획수립에 참여하고 있는 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 이석희 소장과 필자가 토론에 참여하였다.
도산이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한국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비록 분단 70주년을 동시 기록으로 떠안고 있긴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OECD 회원국으로 이웃 나라를 도울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지방자치제도의 민주화, 국토의 균형발전, 마을 개발 등으로 국민의 생활과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도로와 교통수단의 발달은 생산과 소비구조의 혁신으로 이어져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없애고 있다. 이제는 삶의 질과 행복 지수를 높이는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등장했다. 인문학의 새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세미나는 주거환경개선이나 도시균형 발전 등 도시개발계획 수립과정에서 먼저 생각해야 할 요소들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했다는 점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도산이 시도했던 ‘모범촌’에서 역사적인 뿌리를 찾고 한국형 도농개발의 철학을 수립하고자 했던 시도가 돋보였다. 도산이 제시했던 ‘사람중심의 주거환경 조성과 농지개발,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 평생교육과 직업교육, 애국혼을 심고 독립군을 양성하는 군사훈련장 건설, 아동교육 제도의 확립, 경제와 신용과 문화생활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덕, 체, 지 삼육의 훈련장 건설과 병원, 금융기관, 협동기관 등을 기본으로 갖추는 마을개발과 민주제도의 도입과 자치능력의 향상 등’을 현대적으로 재맥락화 하려는 시도는 흥사단 미래 비전 수립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주는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참가자들은 발제와 토론을 통해서 도산의 이상에 공감하였다. 국토를 빼앗긴 상황에서 전 세계에 흩어져 난민처럼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을 위해 그들이 머무는 지역을 모범촌으로 최적화하려는 시도는 미주 공립협회의 성공 모델이 그 시작이었다. 임시정부 수립 이후 해외를 떠도는 동포들은 도산에게 모두 대한의 국민이었다. 이들이 개병, 개납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개업의 여건 조성을 해야만 했다. 다시 말하면 대한의 국민은 공화국의 국민으로 새로 태어나야 했고, 독립전쟁이 벌어지면 모두 병사로 싸울 준비와 기술과 힘을 갖추어야 하고, 평상시에는 생산 활동에 종사하면서 근대적 지식으로 무장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되며 임시정부에 납세를 해야 했다. 도산은 임시정부를 둘러싸고 대립과 분열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더욱더 국민훈련을 위한 기지개척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도산은 기지개척을 위해 중국 전역과 세계 곳곳을 답사하면서 끊임없이 토지매입을 시도하였다. 국민에게 국토를 마련해 주어 독립국 국민의 자질을 갖추게 함이다. 도산의 독립운동 비전은 국토와 국민에 있었다. 조국이 광복되면 모범촌의 사람과 협업 기술이 그대로 해방된 조국의 근대화에 적용될 것이었다. 동포들의 의식 수준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여 이를 실현하게 하고자 노력했던 도산의 독립운동 과정에 대해 세미나 참가자 모두 깊은 공감과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도산의 처절한 염원이 담긴 기지개척운동을 춘원이 소개하고 있는 대로 ‘이상촌’의 이상으로 단순화시켜 버릴 수가 없다. 장리욱 선생도 도산의 이상촌은 ‘모범촌’으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지적한 바 있고(장리욱 도산의 인격과 생애 10장), 또 어떤 저자는 도산의 모범촌의 이상을 일반인이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상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지적한 바도 있다.(강영현, 2003. P265) 따라서 도산의 모범촌을 현대에 적용하기 위해서 어떤 명칭을 써야 할지는 후학인 우리가 더 연구하여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
오늘날 흥사단은 도산의 이상에 따라 ‘사람이 환경을 개선하고 창조하는 원동력이라고 믿고, 사회와 역사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주체’라고 확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사회를 ‘융복합창조시대’라고 보고 ‘협업만이 살 길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환경 속에서 소외를 극복하고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사람끼리 협동하고 협력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도산이 가르쳐 준 자아혁신과 단결훈련을 통한 국가와 사회개조를 기본 정신으로 하고 있는 흥사단의 강령은 시대를 뛰어넘는 인문학적 보편성을 확립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보편성이 새로 건설되는 도시나 마을 개발에 철학적 기초로 적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이번 세미나를 개최한 충북지부와 흥사단시민사회연구소가 연구하고 있는 양구의 ‘인문학이 익는 마을 조성’ 사업이 가까운 춘천지부의 비전과 연계되어 새로운 지부 비전 수립에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글 : 흥사단 교육수련원 부원장 이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