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의 시작은 늘 설렌다. 새로운 곳과 사람들에 대한 만남 때문이겠다. 이번 ‘2016 흥민통과 함께하는 진도 통일문화기행’도 그랬다. 게다가 비가 올 거라는 예상을 뒤엎은 날씨와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이 모든 게 흥민통에 근무하는 아내 덕분이다.
진도, 기억과 씻김의 시간
7시 30분, 양재역을 출발한 버스는 5시간을 달려 진도대교에 닿았다. 울돌목의 위엄을 곁에 두고 허기를 달랜 일행은 팽목항으로 향했다. 진도, 팽목항, 그리고 세월호. 벌써 9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희생자는 그 슬픔의 무게를 더욱 짓눌렀다. 어느 분의 말처럼 혼자 오기에는 너무 두려웠던 팽목을 이제야 이제서야 비로소 찾았다. 예상보다 누그러진 감정은 시간이 흐른 탓이겠다. 부끄러운 눈물을 훔치며 ‘故 이봉조 선생 추모제’에 참여했다. 전 통일부차관이었던 이봉조 대표는 흥민통 대표를 지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봉조 선생은 통일부 전신인 국토통일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정책조정실장, 통일부 차관, 통일연구원장을 지내며 일생을 통일을 위해 살다간 소위 ‘통일통’이었다. 마산 출신이었지만, 진도에서 보낸 6개월의 인연은 진도의 가치를 알리는 데 정성을 쏟았던 그를 위해 ‘씻김굿’을 마련하였다.
씻김, 달래어 포용하는 섬김의 몸부림
본 행사에 앞서 노화욱 극동대 석좌교수의 추모사는 구구절절 가슴을 흔들었다. 진도에서는 소리자랑, 그림자랑, 글씨자랑을 하지 말라던 해설사의 말처럼 씻김굿과 제석굿, 다시래기로 이어지는 행사는 다시래기에서 절정으로 치닫더니 길닦는 고풀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다가 상여를 둘러맨 진도만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짊어지고 어울림의 한마당으로 풀어냈다.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진 진도에서 처음 접해본 나에게 진도소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자연의 일부임이 분명했다. 비가 내릴까 조급해하는 사회자의 분주함은 머리 위로 흘러가는 먹구름을 닮았고, 바다 위에 차분히 떠 있는 섬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을, 그 사이를 쉼 없이 흘러가는 바닷물은 진도의 소리로 우리 주위를 감싸 돌았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교향악단이며 한 편의 뮤지컬이었다. 그 속에 평화와 통일이 깃들어 있음은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으리라.
통일, 나와 우리가 만들어갈 오래된 미래
흥사단의 맏형 격으로 흥사단 운동을 이끌어 온 민족통일운동본부의 이번 기행에는 교육운동본부와 투명사회운동본부의 대표와 회원들도 함께 참여하여 내외적으로 행사의 의미를 한층 높였다. 보통의 가정에서도 온 가족이 함께 모이기 어렵다는 요즘의 실태에서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 그리고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온 대한민국은 성장의 아픔을 아리랑에 담아 국민들 스스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이유와 목적은 다를지라도 그 방법이 평화적이며 자주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겠다. 나와 우리가 하나라는 당위성에서 통일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번 기행은 흥사단의 정체성을 보여줄 만한 소중한 프로그램이고 자부할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볼거리와 먹을거리, 들을 거리로 오감이 만족스러운 훌륭한 기행이었다. 다만, 뜻밖의 ‘복병(설사)’으로 뒤풀이의 즐거움을 함께하지 못했던 아쉬움은 다음 기행의 기다림으로 남겨야 한다는 하늘의 가르침으로 되새기려 한다.
- 글 : 신동헌(예비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