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유쾌하게 내뿜는 시민들을 보면서 그 사안에 대해 동의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를 떠나 한결같이 느끼게 되는 사실은 우리의 시민의식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와 있구나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의 성장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가 얼마나 다양성을 존중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정착을 헤아려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다양성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가 발 디디고 살고 있는 이 땅의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고자 한다.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한 지인에 따르면 채식은 단순히 동물을 불쌍히 여기거나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채식주의의 근본에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존중, 그러니까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있는 존재인 인간이라 해도 모든 동식물을 잡아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말인즉슨 인간에 눈에는 비록 하찮게 보이는 동물일지라도 존중해야 하고, 인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 채식으로 그 생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연결시키는 일은 어쩌면 지나치게 비약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인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은 더 잘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는 광우병 괴담이라고 하는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소문들을 접하다보면 채식주의자가 부러워지는 순간도 있다. 당장에 고기를 끊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우리가 동물,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우리는 환경을 돌보는 문제에 지금보다 훨씬 더 신경 써야만 한다. 2100년이 되면 온도가 섭씨 10도 이상 상승하고 지구의 평균 해수면이 88cm나 높아져 홍수의 위험에 항상 몸을 떨어야 하고, 2050년이 되면 육지생물종의 3분의 1이나 멸종할 것이라는 얘기는 너무 먼 얘기처럼 느껴진다고? 그렇다면 이번 여름은 어떤가? 벌써부터 올해 여름의 최고기온은 작년 기온을 가볍게 웃돌 것이라는 등 광우병 괴담 뺨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각 가정에 에어컨 사재기를 부추기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에어컨을 많이 틀면 틀수록 내년 여름은 더 더워질 것이고, 그러면 에어컨 사용량은 더 늘어날 테고, 그 다음 해의 여름은 더 더워지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에어컨 사용뿐만 아니라 습관화된 자동차 타기, 비행기를 이용한 잦은 해외여행, 불필요한 각종 가전제품 사재기 등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내뿜게 한다. 이럴 때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스친다. 예전부터 더우면 옷을 좀 얇게 입고, 추우면 옷을 더 입으면 된다는 단순명료한 생활습관이 말 그대로 우리의 지구가 병들다 못해 인간을 습격하는 일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각 나라에서도 1997년 교토의정서를 채택하긴 했지만 최고로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미국은 2001년 탈퇴하였고, 13억 인구의 중국이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펼치는 것을 보면 교토의정서는 구겨버리면 그만인 종이쪽지에 불과한 것이구나 싶다. 그네들 하는 모양에 속이 뒤틀려서 맘 같아선 어머니 지구니 자연이니 하는 것에 신경은 끄고, 에어컨 바람이나 실컷 쐬고 해외여행이나 잔뜩 다녀오면 좋으련만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우리가 망치고 있다는 자책감은 접어두고 자그마한 실천이나마 보태보는 것이 어떨지... 우리가 광장에 처음 나설 때 느꼈던 두려움도 곧 즐거움으로 바뀌어 버린 것처럼 막상 해보면 그렇게 어렵거나 불편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글 : 흥사단 본부 총무부 차장 박영민
그림 : 온실효과 및 교토의정서발효이후 일정 <출처: 녹색연합>